21년 회고에는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서핑하는 이모티콘을 넣어보았다.
2021년은 파도가 치는대로 몸을 맡기는 한 해였다.
내새끼 너무 소중해
희망차고 즐거운 한해를 보냈다
2020년, 신규 프로덕트가 아이디에이션되고 런칭 되는 전과정을 함께 했다.
프로덕트 분석가로서는 너무 소중한 경험이었다. 내가 분석했던 내용들이 프로덕트 기획부터 런칭, 그리고 프로젝트 고도화를 위한 전략에 매순간 반영되는 걸 보며 한단계 한단계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회사의 여러가지 사정으로 해당 프로덕트는 대규모 릴리즈 이후 필요한 기능 개선을 충분히 진행하지 못했다. 물론 해당 프로덕트가 생각외로 굉장히 빠르게 기존 서비스의 일부로 안착했고, 특별히 추가로 조치를 계속 하지 않아도 자생할 수 있는 기능이 되었기 때문도 있어 한 편으로는 매우 기쁘기도 했으나, 솔직하게 말하면 조금 더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어 아쉽기도 했다.
본인은 수면욕, 식욕, 성취욕 중에 성취욕이 가장 강한 사람이므로, 내가 일궈냈다고 생각되는 일을 뒤로하고 다른 일을 손에 잡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아이를 가진 부모들과 얘기해보면 첫번째 아이가 탄생하던 순간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있다는 데, 그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생각보다 빠르게 자라버린 첫 아이를 두고 출근을 하는 기분이란 이런 기분 아닐까. 감히 짐작만 해본다.
동료를 잃고, 다시 얻다
돌이켜보면 사실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팀에서 함께 합을 맞췄던 동료들이 비슷한 시기에 각자 서로다른 이유로 이직, 퇴사를 하게 되었다. 하필이면 시기가 겹겹이 맞물렸던게 문제였다. 첫 회사에서 처음 합을 맞춰본 동료들과 이렇게 빨리 헤어질 줄은 몰랐는데... 나는 팀워크가 정말 중요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많이 의지하는 사람이라서 난생 처음 겪어보는 동료들의 퇴사, 이직은 마치 오래된 연인을 여럿 잃은 것 같은 상실감을 줬다.
프로젝트가 전환되는 과정에서 상실감은 당연히 있을 수 밖에 없다. 특히나 첫 회사 입사하고 처음으로 기획부터 참여해서 만들어 나갔던 프로젝트였는데, 애정이 있으니 두고 가는 게 상실감이 클 수 밖에. 그러나 돌이켜보니 프로젝트 전환보다도 내게 더 큰 상실감을 준 것은 함께 팀워크를 맞추며 일하던 동료들의 이직과 퇴사였다.
나와 정말 가깝게 일했던 동료들이 뿔뿔히 흩어지고 나니 이렇게 일해서 무슨 의미가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되겠다 싶어서 대표님께 면담을 요청했다. 이런저런 상황이 너무 힘든데 어떻게 해야할지, 너무 고민이 많이 된다고 솔직하게 얘기하고 조언을 구했다. 다행히도(?) 대표님께서는 내 상황에 대해 솔직하게 피드백을 주셨고, 멘탈을 다잡을 수 있었다.
대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민님이 평생 이 회사에 있을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래도 보민님이 여기서 마음껏 하고 싶은 분석 하고 가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서로 아쉽지 않겠어요.”
맞는 말이라서 그만 힘들어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했다. ‘그래, 아직 나는 여기서 하고 싶은 것이 있고, 해볼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러니까 조금 더 해보자.’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빈자리는 금방 또 새로운 사람으로 채워진다
혼자 방황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떠나간 동료들의 빈자리는 금새 새로운 동료들이 메워주었다. 아직까지도 떠나간 인연들이 그립기는 했지만 ‘그래, 이렇게 굴러가는 게 회사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데이터 인프라 개선이 필요합니다.
이곳에서 할 일을 찾자고 마음을 고쳐먹은 이후, 나는 눈에 불을 켜고 ‘내가 여기서 진짜 하고 싶은 일’, ‘내가 진짜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찾았다.
그 중에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은 중구난방으로 쌓여있는 로그 데이터를 통합하고 노후화된 데이터 인프라를 개선하는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여러 이해관계자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는데, 데이터팀, CTO, 개발팀(프론트, 백엔드, 웹, 앱)과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했다.
데이터팀에서 계속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나 여력이 없어 하지 못했던 숙원사업들을 정리해 리스트업을 했다. 경영진과 미팅을 잡아 킥오프를 진행했다. 프로젝트의 큰 방향성이 잡혔다. 실무자들과 이야기하면서 이런저런 컨벤션을 맞춰보고, 앱과 웹에서 통용하여 사용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을 거쳤다.
정말 뭣모르고 PM을 해보겠다고 나섰던 첫 프로젝트였는데 산넘어 산이라는 게 이런거구나 싶을 정도로 해야할 일들이 많았다. 실제 데이터팀에서 구상했던 것들을 서비스에 적용하기 위해 여러 부서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이 프로젝트의 범위는 내 생각보다 훨씬훨씬 크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결과적으로 그런저런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인프라 개선과 관련한 내용은 기술적 검토에 그치기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지니어분과 계속해서 의견을 나누었던 시간, 이 인프라를 어떻게 고쳐야할까를 고민했던 시간들은 굉장히 소중한 시간이었다. 누군가 이 부분에 대해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것에 대해 공공연히 어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올해 분석용 서드파티 도입 관련하여 논의를 할 때에는 이 툴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내용은 이전 만큼 구구절절 말씀드리지 않아도 되었다. 여러가지 맥락 속에서 어느정도 엔지니어분들이 공감해주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푸시 이렇게 보내도 괜찮은 걸까요?
21년 두 번째로 뿌듯했던 프로젝트는 푸시 타겟팅 효율화 프로젝트였다. 작년까지는 회사에서 서드파티를 많이 활용하지 않고 내부에서 개발한 기능들을 이용해 상당부분을 해결했다보니 유저 분석이나 여러가지 세그먼트 분석을 하기가 어려운 지점이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다양한 세그먼트로 유저들을 분석하기는 어려웠고, 기존에 마케팅팀에서는 인구통계학적인 정보만을 기반으로 푸시, 메일링 타겟팅을 진행해왔다.
내 친구들이랑 나는 같은 20대 여성이어도 생활 방식도 구직방식도 전혀 다른데, 과연 이렇게 푸시를 보내는 것이 최선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날부터 다른 회사들에서는 어떤 방식들을 사용하는지, 다른 방식은 과연 없는지를 리서치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RFM 분석기법을 찾았다.
RFM 분석은 개념이 어려운 분석은 전혀 아니다. 구매 유저들이 얼마나 최근에, 얼마나 자주, 얼마나 비싼 가격으로 구매를 했는지를 기준으로 유저들을 분류하는 기법으로, SQL 쿼리로 짠다고 해도 그렇게 어렵지 않게 짤 수 있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산업군에서 적용시키고 있는 내용들을 읽어보니 개념은 아주 간단하지만 유저 분류에는 효과적일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마침 그때 당시 마케팅팀에서 고민하고 있던 지점이 유저 재구매 유도였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유저들을 구매전환 시키는 것보다는 이미 우리 서비스를 잘 알고 유료 구매를 해봤던 유저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런 유저들을 구분해서 푸시를 보내기 위해서는 RFM으로 유저들을 나눌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이 간단한 분석 기법도 실제 서비스에 적용을 하려니 꽤나 까다로운 지점들이 있었다. 특히 ‘얼마나 최근에, 얼마나 자주, 얼마나 비싼’ 요 세가지가 문제였는데 세그먼트를 나눌 기준을 찾기가 애매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실제 서비스에 적용하기가 어려웠다. 다른 서비스에서는 이 기준을 어떻게 찾는지 궁금해서 구글링을 열심히 해보았는데, 명확하게 어떻게 하면 된다고 나와있는 글을 볼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얼마나’의 기준은 산업군마다 서비스마다 모두 다 다르기 때문에 누가 ‘이렇게 해라!’라고 말해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레퍼런스 찾기를 포기하고 우리 서비스에 맞는 기준을 찾아보자 하는 쪽으로 사고를 전환했다. 내가 못찾겠으면 컴퓨터의 도움을 한번 받아볼까 생각하면서 머신러닝의 힘을 빌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유저군을 분류하는 머신러닝 기법인 클러스터링에 대한 이야기는 그간 많이 들었었는데, 실제 코드로 구현해보고 서비스에 적용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우리 회사 유저 데이터에 클러스터링을 적용하며 고민했던 내용은 아래 세가지였다.
1.
어떤 클러스터링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지
2.
어떤 방식으로 분류 모델을 평가 해야하는지
3.
데이터를 어떻게 전처리해야 클러스터링의 정확도가 높아지는지
위 세가지에 대해 조사해보고 여러가지 실험을 해보면서 유저들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분류해보았고,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분류 방식을 찾아냈다. 회사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이런 기법이 있다는 걸 알아도 데이터를 구하기가 힘들어서 실습을 해보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은 넘쳐나는 데이터에 바로바로 적용해볼 수 있다는 게 너무 기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작업했던 것 같다.
몇일 빡세게 작업을 하고나니 얼추 유저 구분을 할수 있는 모델이 완성되어 분석했던 내용을 마케팅팀에 공유드렸다. 다행히 마케터분들께서는 분석 내용을 굉장히 흥미로워하셨다. 그 다음부터는 CRM 담당자께서 제안드린 내용을 이용하여 푸시 마케팅 전략을 꾸리시는 것을 보았고, 실제 푸시 발송시에도 좋은 결과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게되어 뿌듯하기도 했다.
2021년 쉽지 않았지만, 배운 것이 많았던 한 해
21년은 여러모로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더 배운 것이 많았다. 상반기에 불편하고 어렵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결과적으로는 회사에서 어떤 일들을 해야할 지 더 깊게 고민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어주었다. 덕분에 하반기에 더 주도적으로 의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분석가로서 분석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분석한 내용이 의사결정까지 이어지게 만드는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었는데, 올해에는 그 말을 정말 피부로 많이 체감했던 한해였다. 다행히 내가 도맡아서 했던 프로젝트들에 대해 긍정적인 피드백이 많이 있어서 업무를 진행하며 성취감과 효능감을 많이 느낄 수 있었고 덕분에 자신감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22년은 연초부터 내가 PO를 맡아 진행하는 일들이 여러건 진행 되고 있다. 분석을 통해 필요한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직접 PO가 되어 진행되는 전과정을 면밀하게 살펴보며 실험을 해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즐거운 경험이다. 물론 인프라 관련해서는 아직 개선할 지점들이 많이 남았지만, 올해에는 충분히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22년은 또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Plus
쫌쫌따리 굴러가던 분석가 커뮤니티 데이터리안을 본격적으로 키워보겠다며 친구들이 사업자 등록증을 내고 회사를 만들어버렸다. 본업이 있어 맘처럼 많이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재미있어 보이는 일들이 있으면 온 마음으로 돕고있다. 멋진 사람들, 승승장구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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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5개월 후
데이터리안에 풀타임 멤버로 합류하게 되는데.. to be continued